꿈이 있는 집, 늙지 않는다 - 장욱진 가옥

정덕희의 사람 향기가 있는 고택

꿈이 있는 집, 늙지 않는다 - 장욱진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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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토속적인 감성을 담아 한국적 추상화를 개척한 거장 장욱진. 우리는 작고한 그의 흔적을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로 119-8 장욱진 가옥. 수도권 아파트의 난개발 속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가족이 지킨 공간이라 더 소중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장욱진을 향한 꿈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집은 더 이상 늙지 않는다.

[정덕희의 사람 향기가 있는 고택]꿈이 있는 집, 늙지 않는다 - 장욱진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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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의 흔적이 남아 있는 힐링 공간
용인 신도시의 아파트촌을 지나 ‘과연 여기에 고택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할 즈음, 홀연히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장욱진 가옥의 마당에는 칼바람이 낸 상처를 쓰다듬듯 따스한 겨울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곳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세련미와 치밀한 구성미를 살려 표현한 장욱진 화백이 그림을 그리며 말년을 보낸 집이다. 이달 ‘고택 시리즈’는 화백의 작품을 좋아하는 필자의 사심이 가득 담긴 섭외였지만 집을 지키고 있는 장 화백의 셋째 딸 장혜수씨(63)와 사위 김익성씨(66)는 두말없이 반기며 집 안을 공개했다.

아버지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집 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화백이 작업 중 쓰던 화로, 그리지 못한 캔버스들, 즐겨 마시던 커피를 위한 모카포트까지 모두 제자리에 놓여 있다. 마치 당장이라도 껑충하게 큰 키의 장 화백이 담배 물고 뒷짐을 쥔 채 중문으로 걸어 들어올 것만 같다. 홍콩에 살며 무역업을 하다 아버지의 가옥을 지키기 위해 귀국한 내외는 이곳에서 주거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낮 시간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낸다. 장혜수씨는 안채에 찻집을 운영하며 고택을 찾는 이에게 아버지와 가옥에 대해 소개한다. 사람의 온기가 없는 집은 생기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김익성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동안 고택 보존과 활용에 대해 문화재청과 이런저런 상의를 많이 했어요. 3년 전에는 마당에 가건물 설치를 지원해줄 테니 민박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저희는 아무리 궁리를 해도 그건 아버님의 뜻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전시 공간으로 꾸며보면 어떨까 싶어 지금 9회째 작품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덕희의 사람 향기가 있는 고택]꿈이 있는 집, 늙지 않는다 - 장욱진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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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당일에는 사라져가는 나무 빨래판을 오브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오성만 작가의 설치미술이 전시돼 있었다. 우리네 고유한 삶의 흔적이 담긴 빨래판에 감각적인 색과 조각을 입힌 그의 작품은 외국인에게 더 인기가 많다. 한옥과 작품의 조화도 훌륭하다. 과연 한옥의 멋과 품위를 살린 활용법이다.
“사실은 고택 관리에는 동네분들의 노고가 빠질 수 없어요. 나무 한 그루를 손보려 해도 집 자체가 오밀조밀하고 좁아서 외부 업체에서 해주길 꺼려요. 그럼 저와 함께 전 이장님이나 통장님이 나무 베는 것을 도와주세요. 얼마 전에는 김장 김치도 한 통 얻었어요.”

그들이 처음부터 이런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수도권 지역 아파트 개발의 바람은 이곳까지 불어와 “아파트가 들어와야 할 자리에 문화재 지정이 웬 말이냐”라며 주변의 반대 운동도 거셌다.

“1년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는 집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 잠을 자야 했죠. 그러나 그들과 등을 지기보다는 차라리 소통을 하자고 했고, 수줍고 남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우리 남매 대신 제 남편이 매일 주민들과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오곤 했죠. 그 덕분에 이제는 화합이 된 것 같아요.”

그들은 꿈을 갖고 있다.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모네 정원’처럼 그의 예술 세계가 담긴 ‘장욱진 정원’을 만들어보고 싶다. 장욱진의 작품 ‘자동차가 있는 풍경’에 먼저 나온 뒤 이를 모티브로 장 화백이 직접 지은 빨간 벽돌의 서양식 건물은 그의 멋이 그대로 드러난다. 건물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제404호)으로 지정됐고, SBS-TV 드라마 ‘떼루아’의 촬영 장소가 되기도 했다.

장 화백의 작업실과 다실이 생전에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장 화백의 작업실과 다실이 생전에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되도록 많은 분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문화 세미나 공간 혹은 돌잔치 같은 소규모 모임 장소로도 사용하도록 하고 싶어요. 무역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을 늘 떠났다가 이렇게 장인 덕분에 말년에 자연과 소통하고 벗하니 제 마음도 안정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은 다들 장가 잘 갔다고 합니다.”

5년 전부터 정원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던 김익성씨는 이제야 집에 햇빛이 드는 방향을 파악한 것 같다고 말한다. 공간과 건물을 활용한 최적의 공간을 위한 그의 신중함이 느껴진다.

아버지 장욱진 이야기
장혜수씨는 아버지를 추억하면 가장 먼저 ‘술’이 떠오른단다. 그는 더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심을 표현한 그림들을 그려온 것에 반해, 작품이 완성되기만 하면 인사동으로 달려가 술을 찾을 정도로 애주가였다.

“사춘기 때는 그게 무척 고민스러웠어요. 그림이고 뭐고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하신다고 생각하니 미웠고, 항상 취해 계시니 집에 친구들을 데려올 수 없어서 화가 났어요. 아버지께서 그림을 준다 하시는 것조차 저는 싫어서 받지 않기도 했어요. 그래서 남매들 중 제가 가장 아버지의 작품이 없어요(웃음).”

역사학자 이병도의 장녀였던 이순경 여사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졌다. 외삼촌들의 도움을 받아 혜화로터리에서 ‘동양서림’이란 책방을 운영하며 남편과 1남4녀의 뒷바라지를 했다.

[정덕희의 사람 향기가 있는 고택]꿈이 있는 집, 늙지 않는다 - 장욱진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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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생전에 절대 당신의 그림을 팔지 않으셨어요. 큰언니가 결혼할 때 뭔가 해주고 싶으셨는지 그때 한 점 파셨던 기억이 있어요. 서울대 미대 교수로도 재직하셨지만 성격이 맞지 않으셨는지 5, 6년 만에 그만두셨고요. 그러니 어머니께서 일을 할 수밖에 없으셨죠.”

예술은 배고프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유명 화가들은 정작 후손에게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장 화백은 아내 덕분에 세상과 타협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후손들은 그들이 가진 소장품 중 1/3을 양주시에 기증해 장욱진 시립미술관을 세울 수 있도록 협조했다. 후손들과 자치단체의 노력으로 만든 미술관은 얼마 전 영국 BBC의 ‘2014년 위대한 8대 뉴 미술관’ 중 하나로 선정됐다.

“어머니께서 기증에 대한 생각이 워낙 확고하셨기 때문에 자식들도 별말 없이 따랐어요. 개인 소장은 관리나 보존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어머니가 마침 아프셔서 병원에 계셨는데 그곳에서 사인을 하셨어요. 기증만큼은 죽기 전에 해놓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현재 한옥에서 전시 중인 ‘빨래판의 미학’ 오성만 개인전.

현재 한옥에서 전시 중인 ‘빨래판의 미학’ 오성만 개인전.

이 여사는 올해 94세로 외부 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하다. 그림은 안 된다고 자식들에게 크레파스 한 다스를 사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의 예술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사랑했다.

“지금 보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셨나 봐요. 수십 년 전부터 아버지의 작품을 연도별로 수첩에 기록해놓으셨더라고요. 아버지의 그림을 모방해 그리시고 날짜를 쓰는 방식으로요. 누군가가 아버지의 그림이라고 가져오면 그 수첩을 바탕으로 진품인지 가품인지 가늠하셨죠.”

부부의 정은 밉든 곱든 한지에 물이 스며들 듯 어느새 그렇게 끈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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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남긴 위대한 유산
장 화백의 작품 중 불심이 깊은 아내의 모습을 형상화해 그린 ‘진진묘’라는 그림이 있다. 최근 이 작품은 서울옥션에 공개되면서 6억2천5백만원에 낙찰됐다.

“어머니를 그리면서 얼마나 혼을 넣어 작업하셨던지 아버지는 그 그림을 완성하고 6개월이나 몸져누우셨어요. 어머니는 그림 탓이란 생각에 작품을 간절히 원했던 어떤 분께 드린 모양이에요. 그 작품이 이번에 경매에 나온 거죠. 경제적으로 여유만 됐어도 저희가 샀어야 하는 작품이었는데….”

남매들 중 비교적 활달하다는 이유로 가옥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다는 장혜수씨. 여름에는 오미자차를, 겨울에는 대추차를 내며 방문객을 맞는다. 그녀의 진하고 깊은 대추차는 이곳의 명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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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얌전해서 제가 이곳을 맡고 있지만 저도 사람을 대하는 것에 그리 능숙한 편은 못 돼요. 어머니도 책방을 운영하실 때 손님 눈 한 번 쳐다보지 못하셨다고 해요. 저도 깜박하고 돈을 내지 않고 가는 분에게 ‘돈 주세요’라는 말도 못하고 그냥 보내기 일쑤였죠. 남편은 그런 저 때문에 돈 넣는 통을 앞에 만들었어요(웃음).”

아버지를 위해, 장인을 위해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부부는 더없이 좋아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꿈이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버지 덕분이다.

“이곳은 미술 계통에서 일하는 분들이나 아버지에 관련된 논문을 쓰는 분들이 자주 찾아오세요. 그래도 장욱진의 가족이 있다는 것에 무척 좋아하고 신기해하세요. 오랫동안 이곳을 보존해달라며 손을 꼭 잡고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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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족에게 남긴 것은 한 점당 수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작품들이 아니다. 매주 일요일이면 5남매와 이 여사는 이곳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장 화백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추억이 담긴 공간을 남겨주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 ‘정덕희의 사람 향기가 있는 고택’은 이달을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기획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성구 ■촬영 협조 / 장욱진 미술문화재단(031-283-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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