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여행자]경남 남해 - 그리움은 남쪽 끝 섬으로 흐른다](http://img.khan.co.kr/lady/201505/20150428105136_1_namhae1.jpg)
[정원 여행자]경남 남해 - 그리움은 남쪽 끝 섬으로 흐른다
남해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남해군은 남해도와 창선도 외에 크고 작은 섬 68개로 이뤄진 섬 무리다. 하동과는 남해대교로, 삼천포와는 창선·삼천포대교로 이어진 연륙도(連陸島)로, 제주, 거제, 진도, 강화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옛 조선의 명필가 자암 김구는 이 섬을 일컬어 “하늘 끝, 땅 끝, 한 점 신선의 섬”이라 노래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남해를 신선의 섬이라 칭한 그에게 남해는 유배지였다는 것. 기실, 모든 유배의 땅은 아름답다. 유배자는 뭍으로부터 멀리 격리되게 마련이고, 뭍과 멀어질수록 자연은 순정한 속결을 간직한 까닭이다.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비경을 자랑하는 남해는 유배 문학의 본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포 김만중은 노도로 귀향을 와서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집필했고 자암 김구의 「화전별곡」, 유의양의 「남해견문록」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삼천포와 남해군 창선도를 잇는 총 연장 3.4km의 대교는 3개의 섬을 5개의 다리로 연결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남해 여행의 첫 관문은 남해대교나 창선·삼천포대교 둘 중 하나다. 코스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남해가 처음인 친구들과 함께할 땐 창선·삼천포대교 쪽을 택한다. 보다 버젓한 풍경부터 보여주고픈 게 남해군에 한쪽 발 담근 이의 마음이랄까. 삼천포와 남해군 창선도를 잇는 총 연장 3.4km의 대교는 3개의 섬(늑도, 초양도, 모개섬)을 5개의 다리로 연결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5개의 다리 모두 다른 공법으로 만들어져 각각의 개성을 뽐내는 것이 특징. 육지와 섬만을 잇는 것이 아니라 섬과 섬을 잇는 다리로는 국내 최초다.
5개의 다리를 건너왔건만 남해의 명물인 원시 어업 죽방렴을 구경하려면 또 한 번 다리를 건너야 한다. 창선면과 삼동면을 잇는 창선교가 그것. 원시 어업을 구경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포인트다.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지족해협 한가운데 V자 형태로 촘촘히 박혀 있는 나무 말뚝들이 국가 명승 제71호로 지정된 죽방렴이다. 거센 물살이 지나는 좁은 물목에 대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물고기가 들길 기다렸다가 뜰채로 건져내는 조업 방식엔 공격적인 사냥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어부는 그저 자연에 기대 기다리다가 그날의 바다가 허락한 만큼 생명을 나눠 갖는다.

하동과 남해를 잇는 남해대교. 국내 최초의 현수교로 1973년에 준공됐다. 21개의 주택과 정원은 나라별 이미지와 개성을 담아 원예가 개개인의 작품처럼 조성됐다. 독일마을은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정착촌으로 모든 주택이 독일식으로 지어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그림 같은 마을들이 품은 웃음과 눈물
삼동면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는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나란히 이웃한 원예예술촌과 독일마을이다. 원예예술촌은 21명의 원예가들이 집과 정원을 개개인의 작품처럼 조성해 이룬 마을이다. 뉴질랜드풍 토피어리정원, 스페인풍 조각정원, 프랑스풍 풀꽃정원, 스위스 풍 채소정원 등 각각의 테마를 가진 21개의 주택과 개인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개인 정원 외에도 9개의 공공 정원과 산책로, 전망대, 온실, 전시장, 옥외 공연장 등을 갖춰 볼거리,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산비탈에 자리한 그림 같은 집과 정원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남해의 명물 죽방렴은 지족해협에서 만나볼 수 있다.
독일마을에선 물건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숲, 방조어부림을 조망할 수 있다. 물건리 해안을 따라 녹색 띠를 이룬 방조어부림은 남해에서 볼 수 있는 해안 숲 가운데 가장 울창하다. 육지 쪽으로 둥글게 파고든 해안을 따라 느티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이팝나무, 모감주나무 등 늠름한 나무 1만여 그루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데, 그 길이만 해도 1.5km에 총 면적이 약 23,397㎡에 이른다. 숲을 기준으로 바다 쪽으로는 몽돌해안이 펼쳐지고, 육지 안쪽으로는 정겨운 어촌 마을 물건리가 자리 잡고 있다. 방조어부림은 거친 파도와 바람을 막고 물고기를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이용됐다. 매년 10월, 숲에서 풍어를 비는 동제를 지낸다. 1933년 남해안에 엄청난 태풍이 몰아쳤을 때도 물건리는 방조어부림 덕분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물건리’라는 이름이 재밌다 싶더니만 과연 이 마을, ‘물건’이다. 마을을 수호하는 정원을 해안가에 둔 마을이 어디 흔한가.

정원을 테마로 한 원예예술촌은 독일마을 옆에 자리 잡았다.
쪽빛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과 고깃배, 숲이 우거진 해안선을 감상하며 물미해안도로를 따라가는 길, 미항으로 소문난 미조항을 그냥 지나치면 섭섭하다. 멀리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맑은 바다와 이어달리기하듯 줄줄이 늘어선 조도, 호도, 노도 등 자잘한 바위섬들이 연출해내는 풍경은 과연 미륵이 도왔다는 항구답다. 미조항은 남항과 북항으로 이뤄져 있으며, 남항에는 활어위판장과 건어물위판장이 들어서 있다. 항구에는 주로 횟집들이 많은데, 멸치잡이로 유명한 곳답게 싱싱한 멸치회가 대표적인 별미다.
바다로 나갔던 멸치잡이 배들이 만선이 돼 돌아오면 미조항 앞바다에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멸치잡이의 클라이맥스라 할 멸치털이가 그것. 항구에 도착한 배는 정박하고 있던 바지선과 5, 6m 거리를 두고 바지선에 연결한 그물을 바다에 깐다. 그 그물 위로 멸치를 잡은 어망을 천천히 풀어 내리면 바지선 쪽으로 건너간 네댓 명이 오른쪽, 왼쪽으로 어망을 리드미컬하게 잡아당기며 멸치를 털어낸다. 이때부터 멸치들의 은빛 춤사위가 시작되는데,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멸치 떼와 함께 쉼 없이 움직이는 어부들의 팔뚝에도 푸른 힘줄이 꿈틀거린다.

울창한 숲이 초승달 모양으로 해안가를 에워싼 채 마을을 지킨다. 38경의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 하여 소금강 혹은 남해금강이라고도 불리는 금산에 오르면 다도해가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미륵이 도왔다는 항구 미조항은 멸치잡이로 유명하다. 다른 데선 맛보기 힘든 싱싱한 멸치회가 별미다. 바다로 내리지르는 45도 경사의 산비탈에 일군 계단식 논이 감탄을 자아내는 가천 다랭이마을.
물미해안도로와 함께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는 남면해안관광도로를 따라가다가 가천 다랭이마을 앞에 차를 세웠다. 바다로 내리지르는 45도 경사의 산비탈에 석축을 쌓아 일군 100여 층의 계단식 논은 가히 경외심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얻기 위해 가파른 산비탈을 일궈 농사를 지어온 섬사람들의 끈끈한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숱한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기도 한 마을은 독특한 풍경 덕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관광객을 상대로 막걸리와 해물파전, 두부김치, 가오리찜 등을 파는 집들이 곳곳에 눈에 띄는데, 남해 특산품인 마늘과 유자를 첨가한 지역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다랭이마을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관광지로 변모한 지금의 마을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밭은 놀고, 음식점과 숙박지만 즐비한 풍경이 못내 아쉽기도 할 터. 하지만 어쩌겠는가. 근근이 밭농사의 명맥을 이어오던 할매들이 호미 들 힘도 없이 늙어버린 것을. 아쉽다고 입맛을 다시다가 바다 한 번 바라보고, 공연히 막걸리 한 병 더 비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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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여행자]경남 남해 - 그리움은 남쪽 끝 섬으로 흐른다
5월 23일(토)부터 24일(일)까지 이틀간 원예예술촌에서 2015 남해정원예술제가 열린다.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만나는 원예예술촌은 쪽빛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서 정원 미학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거리 공연과 설치미술, 캘리그래피전을 비롯해 각종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문의 www.원예예술촌.kr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