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 - 겨울 강(冬江)에 갔다

길 위의 독서

강원도 평창 - 겨울 강(冬江)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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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을 앞마당 삼은 문희마을은 고적했다. 심심산골과 섬마을이 외로움을 겨룬다면, 아마도 겨울엔 산골이 우세할 것이다. 나룻배 한 척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었다. 노를 저어 얼음을 깨며 물길을 내는 배는 더디지만 조금씩 가까워졌다. 시야를 흐리는 물안개가 소리마저 지우는 것인지, 작은 쇄빙선은 기척도 없이 얼음을 갈랐다. 파르스름한 새벽빛에 길게 누운 동강의 첫인상은 ‘동쪽 강(東江)’이 아닌 ‘겨울 강(冬江)’이었다.

문희마을에서 바라본 동강의 새벽. 언 강을 깨며 나룻배가 노를 저어 나간다.

문희마을에서 바라본 동강의 새벽. 언 강을 깨며 나룻배가 노를 저어 나간다.

얇아 짐이 되지 않고, 아무 쪽이나 펼쳐 한두 장이건 서너 장이건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시집은 여행 중 ‘쪽독서’에 가장 적합한 책이 아닐까 싶다. 하여 여행 가방을 챙길 때면 시집을 꽂아둔 책장 앞에서 서성이게 되는데, 선택의 기준은 대개 그 즈음에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거나 여행지와 어울리는 분위기의 제목이다.

평창행을 준비하며 김사인 시인의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꺼내든 이유는 전자에 해당한다. 최근 가장 많이 만지작거렸던 시집이고, 여럿이 술을 마시다가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고마워 불쑥 가방에서 꺼내 선물하기도 했던 시집이며, 다음날 술이 깨자마자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 바로 주문할 만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자 했던 시집이다.

 ‘아름다운 여울’이란 뜻을 가진 이름처럼, 미탄면에 흐르는 동강은 유난히 물빛이 곱고 맑다.

‘아름다운 여울’이란 뜻을 가진 이름처럼, 미탄면에 흐르는 동강은 유난히 물빛이 곱고 맑다.

차 안에서 혹은 낯선 잠자리가 불편해 뒤척이는 밤. 스르륵 시집을 넘기다 대뜸 책장을 가르고 마주하는 시 한편은, 골똘한 질문을 품고 타로 카드 한 장을 뽑아 마음의 향방을 좇는 일과도 같다. 밤이 깊기도 전에 술은 떨어지고, 심심산골의 구멍가게는 일찌감치 문을 닫고, 잠은 멀찌감치 달아난 밤. 동강을 앞마당처럼 내다보는 민박집에서, 시로 점친 운수는 다음과 같았다.

탑을 쌓는 물고기가 사는 마을
평창군 남동쪽에 위치한 미탄면 마하리는 본동과 문희마을 지구로 나뉘며, 이들을 통합해 어름치마을이라 칭하기도 한다. 문희마을 앞을 흐르는 동강에 천연기념물 제259호로 지정된 어름치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관령 하늘목장 정상에 오르면 풍력발전기들이 만들어내는 위풍당당한 바람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대관령 하늘목장 정상에 오르면 풍력발전기들이 만들어내는 위풍당당한 바람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하천의 중·상류, 물이 맑고 자갈이 많은 여울에 주로 서식하는 어름치는 독특한 산란 습성으로 주목받는 물고기다. 깊이 5~8cm, 지름 30~50cm, 높이 10~20cm에 달하는 돌무덤 모양의 산란탑이 그것. 강바닥의 자갈을 파내고 알을 낳은 후 다시 자갈을 하나하나 입으로 물어와 알을 덮고 탑을 쌓는데, 짐작하다시피 이는 다른 물고기들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산란탑을 쌓는 노역은 야간에 이뤄진다. 사람도 짐승도 깊이 잠든 산골의 밤. 홀로 깨어 분주히 돌탑을 쌓는 어름치의 모성은 낯설 것도 없다.

철새였다가 텃새로 눌러앉은 비오리, 수달과 산천어 등 멸종 위기 동식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는 문희마을은 자연생태계가 온전히 보존된 지역으로 손꼽힌다. 백운산을 등에 지고 마을 앞으로 강이 흘러, 들고 나는 사람이 드물었던 덕분이다. 유래를 들추면 사연 하나쯤 있을 것 같은 마을 이름 ‘문희’는 산골 처녀도 아닌 이 마을을 지켜온 견공의 이름이다. 황구도, 백구도 아닌 문희라니. 어쩌면 문희의 주인은 사람이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라고 어림짐작해본다.

마을 앞 강물은 200리 동강 중에서도 물색 곱고 맑기로 유명하다. 미탄, ‘아름다울 미(美)’에 ‘여울 탄(灘)’ 자를 쓴다. 해가 지고 도착한 터라 곱다는 물빛은 이른 아침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줄줄이 꿰어 말린 곶감을 주렴처럼 늘어뜨린 민박집 창밖으로, 간밤엔 칠흑 같던 강이 푸른 몸체를 드러냈다.

흐르는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상원사 계곡. 가만히 귀 기울이면 얼음장 밑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흐르는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상원사 계곡. 가만히 귀 기울이면 얼음장 밑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문희마을에서 칠족령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은 산자락을 휘휘 감고 돌아가는 오솔길이다. 그늘진 숲길엔 2주 전에 내렸다는 눈이 살짝 언 채 쌓여 있었다. 산짐승의 발자국만 총총 박혀 있는 눈밭은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 한 시간 남짓 오솔길을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면 비로소 동강 전망대에 이른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오메가(Ω) 형태의 물돌이를 휘감고 도는 초록 물줄기는 장쾌한 용틀임과 다름 아니었다. 정선에서 시작해 평창을 거쳐 영월에 이르는 65km의 동강은 한 번도 곧게 흐르는 법이 없다. 첩첩산중을 휘돌아 굽이치는 물줄기가 마치 뱀이 기어가는 형상과 같다 해 ‘사행천(蛇行川)’이라고도 불린다.

문희마을에 왔다면 백룡동굴은 꼭 한 번 들러볼 만하다. 1976년 이곳 주민에 의해 발견되고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30여 년 동안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동굴이다. 자연석회동굴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백룡동굴은 수억 년의 시간이 깃든, 평창의 가장 깊은 속살이다. 동굴 입구까진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헤드랜턴이 달린 헬멧에 탐사복까지 착용하고 배를 타니, 탐험에 대한 유년의 로망이 되살아난 듯 설레기도 했다.

동굴까지 탐사 대원들을 건네주는 선장님의 곡진한 수석 아트.

동굴까지 탐사 대원들을 건네주는 선장님의 곡진한 수석 아트.

짧은 뱃길 중 강변 사구에 펼쳐진 ‘돌’ 설치미술 작품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제법 큼지막하고 모양 좋은 돌들을 열 지어 세운 것인데, 그 광대한 스케일의 수석 전시는 동굴까지 탐사 대원들을 건네주는 선장님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말 수 적은 설치미술가는 승선객의 찬사에도 아랑곳없이 “수천 개 세웠을 땐 좀 볼 만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기껏 모양 좋은 돌을 골라 세워도 물에 쓸려 나가면 그뿐. 그때마다 다시 돌을 고르고 세웠으리라. 아름다움을 짓는 일은 왜 늘 외롭고 곡진한 것인지.

억겁의 시간을 보존한 무결한 어둠
백룡동굴 안엔 이동로를 표시하는 줄 외에 인공 구조물이 거의 없다. 동굴 내부를 밝히는 조명 시설도 없기 때문에 불빛은 헬멧에 달린 랜턴과 가이드가 비춰주는 조명등에 의지할 뿐이다. 개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포복 자세로 땅을 기기도 하고 수시로 오리걸음을 걸어야 한다. 몸이 조금 고생스럽긴 하지만 각양각색의 종유석과 석순, 석주 등 억겁의 시간과 물방울이 만든 기기묘묘한 동굴 아트가 이를 충분히 갈음한다. 동굴 가이드 대부분은 미탄면 주민들이다. 동굴 생성물에 ‘파이프오르간’, ‘김삿갓’, ‘신의 손’, ‘달마상’ 등의 작품명을 붙이고 작품 생성 원리를 들려주는 이들은 ‘동굴 큐레이터’라 부름이 마땅하다. 기본 뼈대는 정해져 있지만, 큐레이터의 관찰력과 상상력에 따라 동굴의 스토리텔링은 무한대로 변주된다.

수억 년의 시간이 깃든 백룡동굴 속 천변만화하는 동굴 아트.

수억 년의 시간이 깃든 백룡동굴 속 천변만화하는 동굴 아트.

입구부터 750m 지점, 탐사의 마지막 코스는 대형 광장이다. 큐레이터의 안내에 따라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랜턴을 끄고 20초간 ‘절대 어둠’을 경험했다. 실낱같은 빛줄기 하나 스밀 틈 없는 완전무결한 어둠. 예기치 못한 암전에 당황한 신체는 시각 외에 다른 감각기관을 확장하느라 분주해졌고, 곧 볼륨을 키운 듯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숨소리가 커졌다. 동굴은 본래 어둠의 세계다. 하여 동굴에 사는 생물 중엔 아시아동굴옆새우처럼 아예 시각이 퇴화된 종도 있다. 애초에 빛이 없다면, 눈도 필요 없는 것이다.

시야가 사라진 세계와 소리가 사라진 세계 중 어느 편이 더 막막할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야말로 막막한 상상이었지만, 음 소거된 세계 쪽에 손을 들었다. 생생한 색깔과 양감을 지닌 세상이 기척도 없이 튀어오르고 달려들 게 두려웠던 까닭이다. 하지만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의 개념조차 삼켜버린 어둠의 원형은 공포를 뛰어넘었다. 20초 어둠 명상이 끝나고 동굴 큐레이터가 한 곳에 조명을 밝히자 다채로운 생성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명 ‘만물상’이라 불리는 동굴 아트의 종합선물세트였다.

군 전체 면적의 약 65%가 해발 700m 이상의 고원지대로 이뤄진 평창의 슬로건은 ‘Happy 700’이다. 해발 700m는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는 지점으로, 사람과 동식물이 기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가장 이상적으로 생활하고 생장할 수 있는 고도라 한다. 축복 같은 동강의 비경들을 만났지만, 평창까지 와서 대관령을 건너뛰긴 아쉬운 노릇. 평창의 최남단 미탄에서 북쪽의 대관령으로, 평창을 대표하는 하늘과 바람의 땅으로 내처 달렸다. ‘절대 어둠’의 동굴을 나와 ‘절대 바람’의 언덕으로 향하는 길. 긴 겨울 강이 한참이나 뒤를 따르며 배웅했다.

칠족령은 문희마을과 제장마을을 잇는 고갯길로, 장쾌한 용틀임 같은 동강의 비경을 조망할 수 있다.

칠족령은 문희마을과 제장마을을 잇는 고갯길로, 장쾌한 용틀임 같은 동강의 비경을 조망할 수 있다.

그대는 강 건너서 잠이 드시고
곤하여 가랑가랑 코도 고시고
나는 나는 창 저편
강물로 스미는 눈송이에나 기대네
무심한 서양 노래나 따라서 흘러가보네
그대 깊은 잠 흔들릴세라
마지막 한잔을 조심히 비우고
목젖 떠는 소리도 조마로워라
강 건너 단잠 속에 그대를 묻고
이만치서 누리는 적적한 평화
이 생각도 저 생각도 나지 않고
먹먹하게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
- 김사인, ‘적막에 바침’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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