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조를 바라보며 적석사가 한 송이 붉은 연꽃으로 피어날 즈음 저녁 예불이 시작된다.
관광지도를 펼치니, 국내에서 다섯 번째 큰 섬이라는 강화는 생각보다 넓고 갈 곳도 많았다. 산과 바다, 갯벌을 고루 품고 있는데다 고조선부터 고구려, 고려, 조선의 유적과 유물이 널려 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단군이 제를 지낸 참성단이 남아 있는가 하면, 39년간 고려의 수도로 자리매김한 터라 고려 궁지도 있다.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긴 1232년부터 다시 환도한 1270년까지 38년간 사용된 고려 궁궐터.

마그네슘 함량이 높은 토양에서 청정수로 재배된 강화섬쌀은 밥맛 좋은 쌀로 손꼽힌다.

임진강과 예성강, 한강이 합류하는 강화도 앞바다에서 생산된 새우젓은 내륙에서 유입되는 풍부한 영양염류를 섭취해 감칠맛과 높은 영양가를 자랑한다.
제주에 올레길이 있고 지리산에 둘레길이 있듯, 강화엔 ‘나들길’이라는 도보 여행 코스가 있다.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이란 뜻을 지닌 강화 나들길 19개 코스는 선사시대의 흔적부터 자연 생태계의 속결까지, 강화에 깃든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중 길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의 출발점인 용흥궁을 찾았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강화팔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하루아침에 신분이 바뀐 철종의 생애는 「왕자와 거지」 이상으로 드라마틱하지만, 동화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는 씁쓸하다. 강화도 시절, 철종에겐 혼인을 약속한 마을 처녀가 있었다고 한다. 철종은 “강화에 있을 때가 좋았다”라고 자주 되뇌며, 종종 강화로 신하를 보내 찬우물 약수로 만든 막걸리와 순무김치, 젓국갈비 등을 궁궐로 들였다고 한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눌려 제 뜻을 펴지 못한 울분과 정인에 대한 그리움은 방탕한 생활로 이어졌고, 이에 병을 얻어 서른셋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청하동약수터-남장대-찬우물약수터-철종 외가로 이어지는 ‘강화도령 첫사랑길’은 철종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재구성한 길이다.

용흥궁 마당에 깃든 이른 봄소식. 용흥궁은 강화도령으로 불린 조선의 25대 왕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붉은 연꽃으로 피어나는 산사의 저녁
강화읍 서쪽, 고려산 중턱에 고구려 장수왕 때 창건됐다는 적석사란 고찰이 있다. ‘쌓을 적(積)’에 ‘돌 석(石)’ 자를 쓴 적석사의 원래 이름은 ‘붉을 적(赤)’에 ‘연꽃 련(蓮)’ 자를 쓴 적련사다. 창건 설화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도의 한 승려가 진나라를 거쳐 고구려에 들어와 절터를 물색하던 중, 강화도 고려산에 이르러 다섯 빛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지(蓮池)를 발견한다. 그는 다섯 송이의 연꽃을 공중에 날려 연꽃이 떨어진 곳마다 사찰을 지었는데, 붉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지은 절이 적련사(赤蓮寺)다. 적련사가 적석사로 이름을 바꾼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산과 절에 불이 자주 나는 바람에 불을 연상시키는 ‘붉을 적(赤)’ 자를 지웠다는 것. 그럼에도 맑은 저녁, 낙조에 물든 절집은 한 송이 붉은 연꽃으로 피어난다.

젓갈수산시장이 위치한 외포항. 석모도로 가는 배편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해 뜨고 해 지는 풍경은 기다림 끝에 한순간이라, 지켜보는 이들에게 골똘한 집중력을 요한다. 일몰이 진행되는 동안 기념 촬영을 하느라 떠들썩했던 단체 관광객도 해가 완전히 잠기는 순간엔 말을 멈췄다. 여럿이 어우러져 쏟아내는 말과 말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순간이 있다. 불현듯 찾아드는 그 침묵을, 프랑스인들은 ‘천사가 지나간다’라고 표현한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맞은 일몰의 순간, 찰나의 고요 속에 무언가 지나갔다. 붉은 연꽃 위 관음보살이거나, 어쩌다 꿈결에 만나는 아득히 그리운 당신인지도 모르겠다.
낙조대에서 내려오자 적석사의 저녁 예불이 시작됐다. 산중의 어둠은 쏜살같아서 먼 하늘엔 일몰의 여운이 남아 있건만 절집 마당은 이미 별을 헤아릴 만큼 깜깜하다. 범종각을 장식한 연등이 점화되고 타종이 시작됐다. 종소리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듣는 것임을 새삼 느끼며, 가슴께로 파고드는 떨림 위로 두 손을 모았다.

강화성당의 종을 멀리서 보면 사찰의 범종과 다를 바 없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십자가와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다.
종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는 것은
종이 속으로 울기 때문이라네
외부의 충격에 겉으로 맞서는 소리라면
그것은 종소리가 아닌 쇳소리일 뿐
종은 문득 가슴으로 깨어나
내부로 향하는 소리로 가슴 소리를 내고
그 소리로 다시 가슴을 쳐 울음을 낸다네
그렇게 종이 울면
큰 산도
따라 울어
큰 산도
종이 되어주어
종소리는 멀리 퍼져 나아간다네
-함민복 「詩人 2」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